[연재칼럼] 나의 앨리스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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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Wednesday, March 8th, 2017
여권사진

BY 김보람, LG전자 UX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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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 나의 앨리스이야기 #4 현실세계의 비판

현실세계의 비판

배경이 가진 의미
앨리스 시리즈가 쓰여진 19세기 빅토리아시대는 영국이 대영제국으로서의 위상이 절정에 이른 시기로서 산업혁명으로 인해 도덕주의와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산업혁명의 긍정적인 측면에 반하여 부정적인 측면도 대두되었는데 캐럴은 '앨리스' 시리즈의 의인화된 캐릭터와 황당한 사건들을 통해 산업혁명과 부조리한 세계에 대해 비판하고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당시의 사람들이 느꼈던 당혹감와 혼란스러움을 표현한다.

'이상한 나라'는 혼란스러운 지하세계처럼 신이 부재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도널드 래킨(Donald Rackin)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제가 '지하세계의 앨리스'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지하세계에서는 지상세계에서 받아들여지는 관습과 의미와 질서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넌센스의 세계로 표현되며 이상한 나라는 나름대로의 논리로써 "지상 세계가 갖는 저속한 논리를 파괴한다"고 설명한다[2]. 넌센스 세계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일관성 없는 논리에 따라 반응하기 때문인데, 그들의 무례하고도 급작스러운 태도는 통속적인 현실 세계의 부조리성과 비논리성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지하세계를 이용했다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거울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거울 뒤에 있는 '거꾸로 된', '뒤바뀐' 세계를 통하여 당시의 사회를 비판한다.

붉은 여왕 가설
실제 사회의 모습에 대한 명료한 인식과 맹렬한 비난은 비단 배경의 선택에서 그치지 않는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와 함께 나무 아래에서 계속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계속 뛰어도 제자리인 것이 이상하다"고 묻는 앨리스에게 붉은 여왕은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계속 뛰어야 된다"고 답한다.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어떤 물체가 움직이면 그 주변 세계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 전진을 하려면 움직이는 세계보다 두 배 세 배 더 빨라야 겨우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혹자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산업사회에서 성공의 야망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질주하는 자본주의자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도 하고, 진화 학자는 생태계의 쫓고 쫓기는 평형 관계를 묘사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또 물리학자들은 이 장면을 아무리 빨리 달려도 빛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현상에 대한 비유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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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나라의 앨리스> 에 등장하는 앨리스와 붉은 여왕의 달리기

여러 비유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미국 시카고대학의 진화생물학자 리 밴 베일런(Leigh van Valen)이 1973년 제시한 '붉은 여왕 가설'이다. 해양 화석을 연구하던 그는 종의 멸종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하게 된다. 어떤 종이 환경에 적응했더라도 결코 방심할 수가 없는데, 다른 종들도 그 환경에 곧 적응하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는 진화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결국 뒤쳐져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붉은여왕 가설'을 소개한 '새로운 진화 법칙'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고 그 진화학적 원리를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라고 명명했다[5]. 1993년 과학저술가 매트 리들리(Matt Ridley)는 <붉은 여왕: 성과 인간 본성의 진화, Red Queen: Sex and the Evolution of Human Nature>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이 널리 알려지면서 '붉은 여왕'은 더욱 유명해졌다. 붉은 여왕 가설은 진화학에서 거론되는 원리이지만 이 원리는 진화론 뿐만 아니라 경영학의 적자생존 경쟁론을 설명할 때도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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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소설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도도새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명체 가운데 적게는 90%, 많게는 99%가 소멸했다고 한다[5]. 즉, 거울나라의 이치와 같이 적자생존의 자연환경 하에서 다른 생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화가 더딘 생명체가 결국 멸종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여 특유의 근엄한 모습으로 웃음 짓게 만들었던 도도 (Dodo)새는 서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동쪽 모리셔스 섬에 서식했는데, 지금은 멸종하여 아쉽게도 소설 속에만 만날 수 있는 새가 되었다. 이 새는 모리셔스 섬에 자생하는 칼바리아(Calvaria)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자랐는데 천적이 없는 평화로운 환경과 풍부한 먹이 덕분에 날아다닐 필요가 없어 날개가 퇴화해 버렸고 빨리 뛰어 다닐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다리도 짧아졌다[5].

그러나 15세기 초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의 전개와 더불어 지리상의 발견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모리셔스 섬도 16세기 초 포루투갈 인들에게 발견되었고 오랜 항해에 지친 선원들은 천적이 없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던 도도새를 마구잡이로 포식하기 시작하여 (도도새의 "도도Dodo"는 포루투갈어로 '어리석다'를 의미한다) 도도새는 결국 멸종하게 된다.

앨리스가 토끼굴에 뛰어들어 이상한 나라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세상이 가진 여러 의식적인 문제, 또 뒤틀린 세상의 이면의 모습, 그리고 삶에 대한 진지한 의문과 성찰의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우리의 삶에 안주하거나 타협하고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앨리스가 회중시계를 들고 뛰어가는 토끼를 만난 것은 어떻게 보면 앨리스의 인생에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늦지 않은 지금 나도 다시 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진짜 비밀을 들쳐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여주인공 요나가 크로놀(Kronol)을 이용해 기차문을 부수고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에 한 발 내딛었던 것처럼 우리 인생의 기폭제가 될 크로놀 같은 이 토끼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토끼를 발견하는 것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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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진중권.『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휴머니스트, 2005.
[2] 이수진. "루이스 캐럴의 언어게임—앨리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국근대영미소설학회』, 2005, 12(1), p. 97-118[
[3] 이지현. "루이스 캐럴의 그림책 ‘앨리스’ 시리즈의 상상력을 중심으로 살펴본 화문대구성 연구". 『한국디자인포럼』, 2008, 20, p. 307-316
[4] 진중권. "‘부조리의 세계’로 현실 뒤집다". 『주간동아』, 2005. 406호, p. 104-106 
[5] 류우야. "붉은 여왕 가설". 2016. <http://getitall.tistory.com/entry/%EB%B6%89%EC%9D%80-%EC%97%AC%EC%99%95-%EA%B0%80%EC%84%A4-Red-Queens-Hypothesis-%EC%9D%B4%EB%9E%80>
[6] 이우. "시뮬라크르(Simulacre)와 시뮬라시옹(simulation)". 2013. < http://www.epicurus.kr/?mid=Humanitas&page=8&document_srl=339025>
[7] 이남석. 『앨리스의 이상한 인문학』. 옥당, 2015.
[8] 진중권·정재승.『크로스』. 웅진지식하우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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